메이커 스토리
메이커스토리 16 - 반려동물 생체인식으로 국제표준을 바꿔나가나는 파이리코
July 6, 2021
메이커 스토리
July 6, 2021
반려동물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어주는 파이리코의 대표입니다. 창업은 2018년에 했습니다.
사람이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것처럼 반려동물도 동물등록제라는 것이 있어요. 농림부가 2012년부터 의무화를 시작해 모든 강아지는 생후 2개월이면 등록해야되요. 사람은 지문인식을 통해 주민등록을 하지만 강아지는 발패드에 지문이 없어요. 그래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 내장형 마이크로칩 시술이에요. 쌀알크기만한 무선 식별 칩을 날개뼈 사이에 이식하는 거죠. 그런데 생후 2개월이면 아직 크기가 작은 애기이고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칩을 시술하는 거라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분들은 목걸이에다가 칩을 넣는 형식(외장형 인식칩)을 많이 사용하세요. 하지만 목걸이는 잃어버리면 강아지의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어져요.
파이리코는 이런 현재 동물등록 방식의 거북함과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서비스예요. 사람이 모두 고유의 지문이 있듯이 강아지, 고양이, 소, 돼지 등의 포유류 동물들은 비문이라고 하여 코에 고유한 주름이 있어요. 파이리코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코를 찍으면 비문을 인식하여 동물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어요.
현재 강아지 2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첫아이를 입양할때 동물병원에서 칩시술을 권장했었는데 거북해서 다음에 하겠다고 하고 반년 넘게 등록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첫아이가 한살이 되는 시점에 둘째 아이를 입양했는데 둘째를 입양하면서 첫째도 같이 칩시술 방식이 아닌 외장형 칩 방식으로 등록을 시켰어요. 근데 등록시킨 그날 애기들을 차에 태우고 데려왔는데 둘째의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유일하게 인증할 수 있는 칩이 없어져버린거에요. 그래서 둘째는 동물등록을 신규로 다시 했어요. 둘째 이름이 김파이인데 그렇게 해서 현재 한국에 김파이가 2마리가 있는 걸로 되어있어요.
이런 이벤트가 있던 당시에 저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면서 사람대상 비자발적 홍채인식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어요. 보통 홍채인식을 하려면 기기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서 인식을 해야 되는데 저희가 개발하고 있던건 홍채인식 카메라를 로비에 두면 원거리에서도 다수의 사람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였어요. 이게 기술적으로는 완전 첨단기술이기는 하지만 시장자체가 레드오션이였고 접목할 곳이 마땅히 없었는데 동물등록한 목걸이를 잃어버리면서 반려견 동물등록에 접목을 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연구실에 있던 동료 3명과 창업을 하게 되었어요. 파이리코 이름의 뜻도 Pet Iris Recognition을 줄여서 파이리코예요.
아이디어만으로 사업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홍채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인식기기의 카메라 성능이 좋아야 하는데 이때 일반 카메라가 아닌 적외선 카메라가 필요해요. 저희는 이 적외선 카메라가 달린 강아지 홍채인식 장치 개발을 우선 시도했어요. 데이터도 수집하고 얼마나 촬영에 용이한지 테스트해보고 시제품까지 만들었죠.
시제품을 만들고 나서 동물등록을 해주는 동물병원에 가서 칩시술방식을 저희가 개발한 기기를 사용해 홍채인식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수용도 조사를 했어요.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들께서 등록방식이 번거롭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개발하기 전에 먼저 와서 물어보면 수고를 덜었을텐데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저희가 개발한 홍채인식 방식으로는 영업망 구축이 힘들어서 피보팅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홍채가 아니라 다른 생체정보를 활용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홍채인식을 고집하려다 보니 적외선 카메라 사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사람과 그 구조가 다른 강아지와 고양이 등의 코에는 비문(코에 있는 주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비문인식은 스마트폰에 달려 있는 일반 카메라로도 할 수 있어 굳이 동물병원에 갈 필요 없이 간편하게 집에서도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동물등록을 할 수 있어 홍채인식보다 훨씬 이점이 많았어요.
생체인식이 농림부가 인정하는 반려동물등록의 수단이 되려면 동물등록제와 관련된 법안을 바꿔야해요. 법은 보수적이라 굉장히 강력한 과학적 근거들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생체인식의 높은 정확도나 등록의 편의성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는지를 논문으로 사례 발표를 해야되는거죠.
그리고 해당 등록방식을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반려동물이 다 같은 방식으로 동물등록을 할 수 있어야 돼요. 현재 내장형 칩은 국제 표준이라고 해서 전세계 국가들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표준화가 되어있어요. 반면 외장형 칩 등록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만 적용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외장협 칩으로 등록된 강아지들이 해외 여행을 가려면 내장형 칩 시술을 꼭 받아야 해요.
문제해결을 위해 처음으로 농림부 담당 사무관님과 미팅을하게 되었는데 국제 표준, 국가 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될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기술개발과 동시에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어요.
국제 표준을 만드는 기관으로는 ISO, IEC, ITU라는 3개의 기관이 있어요. 정보 통신 관련 표준은 UN의 산하 기관인 ITU에서 이루어져요. 한국은 ITU에서 표준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매 반기마다 한국 ITU 연구위원회를 열어서 국제 회의에서 발표할 아이디어를 엄선해 국가대표단을 선정해요. 저희가 국제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대표단으로 선정이 되어 ITU 국제 회의에 국제 표준서 제안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는 관문을 반드시 넘어야 됐어요.
그래서 이를 도와줄 전문가분을 찾다가 30년간 생체 인식분야에 몸담고 계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계신 센터장님께 무작정 콜드콜을 보냈어요. 센터장님께서 저희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30년 평생 사람에 대한 생체인식만 다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선 강아지코를 찍으려고 한다니까 크게 흥미를 가지시며 이거는 꼭 해야되는 거라고 생각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센터장님과 함께 국제 표준 제안서를 같이 준비했고 작년 3월에 국가대표단으로 선정 되어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ITU국제 회의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어요.
발표 당시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싱가폴, 말리공화국 등이 참석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심지어 다른 국가에서 소, 돼지 같은 가축에도 이런 생체인증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역제안을 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렇게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어서 현재 국제 표준을 만들고 있고 2023년까지 문서 작업이 완료될 예정이에요. 문서 작업이 완료가 되고 나면 농림부가 국제 표준 문서를 과학적 근거로 삼아 이를 기반으로 생체인식에 대한 성능평가를 한 후 동물등록과 관련된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돼요.
네 말씀하신대로 정말 오랜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2018년도에 창업을 하고 2019년에 MVP가 완성됐고 앞으로 2023년까지 표준문서를 제정하는 시간, 그 후 제정이 되었을 때 법정화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단기간에 생체인식이 상용화되기는 힘들죠.
초기 자금은 시드 투자와 정부지원으로 마련했어요. 특히 제도권에 들어가기 위한 정부지원사업에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파이리코는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루트를 타고 있어요.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디딤돌 R&D 등에 선정되었고 미래과학기술지주로부터 팁스 프로그램을 지원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동물등록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체 인식을 활용해 수익화가 가능한 BM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계속 반려동물 업계에 있다보니 반려동물 전문가 및 수의사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강아지가 분양되기 전 펫샵에 유통하는 과정에서도 신원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더라고요.
현재는 이런 시스템이 모두 수기나 구두로 이루어지고 있어 일부 판매업자들에게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많이 악용되고 있어요.
강아지는 종의 종류나 혈통에 따라 천차만별의 금액을 붙여 판매돼요. 그래서 순종이 아닌 강아지를 순종이라고 하거나 다른 종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어요. 제 강아지도 포메라니안으로 안내받고 데려왔는데 다 자란 후에 알아보니 폼피츠더라고요. 강아지들은 어렸을 때 생김새가 비슷해서 종을 구분하기 어려워요.
강아지를 분양하는 업체에서 이런 종보다도 중요하게 꼽는 게 건강 상태에요. 동물보호법에 동물 판매업자들은 동물들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입양자에게 제시해야 함이 명시 되어 있어요. 펫샵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담은 라벨을 수기로 적어 진열장에 붙여놓는데 이 또한 믿기 어려워요. 강아지, 고양이들은 생후 시기에 따라 필수 예방접종을 해야하는데 많은 펫샵에서 자가접종을 하세요. 수의사가 행하지 않는 이런 자가접종은 명백히 불법이에요. 약물을 관리할 때 특정 온도에 보관하고, 개봉이 된 약물은 폐기 처분을 해야되는 등의 안전수칙을 동물판매업체에서는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얼마전에는 같은 주사기로 서로 다른 강아지에게 주사하거나 돈을 아끼기 위해 사용 후 남은 약물을 다른 개체에게 주사하는 등의 이슈도 화제가 됐어요.
이런 이슈들을 해결해 신뢰도 있는 입양 시스템을 구축하려합니다. 강아지가 태어난 후 예방접종이 이뤄질 때 스마트폰을 사용해 생체 정보를 등록하고, 이 생체 정보로 해당 강아지의 정보를 특정할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코를 찍으면 이 강아지가 어떤 종이고, 어떤 예방 접종을 맞았는지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거죠. 해당 서비스를 시범운영하기 위해 수의사분들과 지속적인 네트워킹이 이뤄지고 있고, 이번 하반기에 수도권에 계신 수의사 10분과 시범운영할 계획이에요.
수의사 한 분과 어떻게든 네트워킹을 하면서 다른 수의사 분들을 소개받아 네트워크를 넓혀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수의사 분들과 네트워킹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수의사 커뮤니티가 폐쇄적인 전문집단이기도 하고 동물병원이 보통 1층에 있어 잡상인처럼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세요. 그래서 처음에 무작정 찾아가봤는데 잘 안받아주시더라고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수의사 선생님들께 감사 엽서를 작성해서 그걸 전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본인이 다니는 병원에 감사인사를 하고싶은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의뢰를 받아 직접 감사 엽서, 꽃다발을 들고 직접 전달을 하러다녔어요. 감사엽서를 전달하며 안면을 트고 관계를 쌓은 수의사님들이 생겼고 친분을 쌓은 수의사님들께 다른 분을 소개해달라고 했어요.
현재 12명이 함께하고 있어요. 서울과 울산에 나눠져 있고 서울에는 영업, 기획, 마케팅 팀으로 울산에는 R&D팀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제가 유니스트 석사과정 중 휴학하고 창업을 했는데 첫 시작은 유니스트 출신 팀원들과 함께했어요.
처음에 홍채인식 장치를 다 만들고 나서 수의사분들을 찾아간 게 큰 실수였던 것 같아요. 시제품 개발을 완료해두고 수용도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이해관계자들과 논의가 있었다면 큰 기회비용을 세이브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또, 먼저 제안하거나 도전하는 걸 주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KISA 센터장님께 콜드콜을 걸지 못했다면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거고, 국제 표준을 만드는데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파이리코의 비전은 ‘모든 반려동물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이고 미션은 “생체인식으로 칩 없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에요.
정부부처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세부적으로 파악하여 이뤄지는 발빠른 대처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만들었을때 좋은 점도 있지만 이해관계자에 따라 반발이 일어날 상황도 파악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